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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자독식, 그 '야만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 우석훈 :: 2010. 1. 28. 18:54


이긴 자가 다 갖는 건 당연하다고?

 

그런 세상이 아름다울 수 있을가!

 

승자독식, 그 '야만의 사회'를 벗어나기 위하여 - 우석훈

 

 

두 친구 이야기

 

 이제 중학교 3학년이 된 두 명의 남자 친구가 있다. 한 친구는 가끔 반에서 1,2등 할 정도로 공부를 한다. 아버지는 일용직 노동자이고 어머니는 대형 할인마트에서 비정규직으로 일을 한다. 물론 학원이나 과외는 꿈도 꾸지 못한다.

 또 다른 친구는 공부를 썩 잘하지는 않지만, 그래도 반에서 중상위권 정도의 성적은 유지하고 있다. 아버지는 의사이고 어머니는 대학교수이다. 학교 끝나면 학원에 가고, 엉어와 수학은 별도로 과외 수업을 받는다. 초등학교 때부터 계속해 온 생활이다.

 

 이 두 친구의 이십 년 뒤 모습을 지금 예측할 수 있을까?

 

 첫 번째 친구는 흔한 말로 '빡쎄게' 공부해서 고등학교 3학년 때까지 지금의 성적을 유지할 수도 있지만 조금 성적이 떨어질 확률이 더 높다. 아마 SKY 대학을 가기는 힘들 테고, 그나마 학비가 싸고 장학금을 받을 수 있는 중상위권 국립대학을 갈 가능성이 크다. 그렇게 대학에 들어간 뒤에도 역시 열심히 공부해서 사 년 동안 좋은 학점을 따고 졸업한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있지만, 수십 통의 이력서를 쓰고 어렵게 중소기업에 취직할 가능성이 더 크다.

 십 년 넘게 열심히 일하면서 그동안 결혼도 하고 아이도 낳았다. 아이 키우는 데는 점점 더 많은 돈이 들어가고 이 년마다 전세금을 올려 주거나, 새로 전셋집을 얻기 위해 전전긍긍한다. 당장 매달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고 대출금도 갚아야 하기 때문이다. 얼른 내 집도 마련하고 아이가 커서 대학 보낼 때까지 들 목돈도 마련해 놔야 한다.

 

 

 두 번째 친구에게는 좀 더 다양한 가능성이 있다. 족집게 학원과 과외를 두루 섭렵하고 스스로도 역시 빡쎄게 노력해서 외고를 가거나, 중학교 1,2학년  때 유학을 다녀왔다면 조금은 쉽게 외고에 들어갈 수도 있다.

 그러고 나서 운이 좋으면 SKY 대학을 갈 수도 있고, 한 단계 낮은 학교이지만 법대나 의대를 갈 수도 있다. 물론 사 년 동안 어학연수도 다녀올 테고, 그럭저럭 졸업을 한다. 운 좋게 대기업에 취직할 수도 있고, 의대를 들어갔다면 조금 힘들지만 의사가 되어 아버지가 도와준 덕에 개인 병원을 차릴 수도 있다. 이도 저도 아니면, 대학 졸업하고 미국에 유학 가서 MBA(경영학 석사) 학위를 따온 뒤 그럴 듯한 기업에 취직하거나 개인 사업을 할 수도 있다.

 어쨌든 결혼하고 아버지가 마련 해 준 집에서 아이를 키우며 산다. 집 값은 계속 뛰고, 개발 예상 지역에 땅을 사 놓을 까 고민 중이다. 아이 역시 자기처럼 어릴 때부터 과외와 학원을 두루 섭렵하고 있다.

 

가난의 대물림과 신귀족의 등장

 

2008년 대한민국에서는 더 이상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으며, 여전히 부자는 삼대가 간다.

이런 일들이 반복되면 부자는 자연스럽게 더욱 부자가 되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가난해지게 된다. 이것을 흔히 '가난의 대물림'이라고 한다. 그리고 이런 일들이 다시 몇 번 반복되면, 꼭 법으로 정하거나 제도를 만들지 않더라도 자연스럽게 사회에는 신분제가 등장하게 된다. 이러한 일은 자연스럽지만, 물론 효율적이지는 않다.

 

 최소한의 인생의 출발선, 특히 교육의 기회는 공평하게 갖자고 약속했고 이것이 바로 형평성의 원칙이다. 이 원칙을 지키기 위해 공교육과 의무교육이라는 장치를 만들었다. 그러나 이제는 더 이상 부자와 가난한 사람들이 공평하게 같은 출발선에서 시작한다고 이야기하기 어려워졌고, 현실적으로 '신귀족'이라고 불리는 사람들이 등장하게 되었다. 그 반대편에 있는 대다수가 바로 '88만원 세대'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의 십대들이 이 난관을 뚫고 어떻게든 대학을 졸업하고 나면 어느 정도 소득을 얻게 될지 계산해 본 결과가 88만원이었다.

 

 '두 친구 이야기'에서 볼 수 있는 의사, 변호사, 부자 부모, 유학, 사교육, 일류대학 같은 공통분모를 갖고 있는 사람들, 이들은 Winner이다. The winner takes all!  승자, 가진 사람, 부자가 모두 싹쓸이 하는 세상, 이것이 바로 우리가 가파른 속도로 빠져들고 있는 승자독식의 세상이다.

 

 

한국 경제의 현주소, 8자형 구조

 

1. 피라미드형 구조

 정상적인 사회에 인구구성은 대부분 이런 식이다. 중세와 초기 자본주의 사회도 이렇게 생겼다. 경제 정책이나 문화적 배려 같은 장치를 통해 인위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럽게 경제는 이렇게 피라미드형 구조를 가지게 된다. 그러나 이 구조에서는 아주 적은 사람들만 행복하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살기가 힘들기 때문에 주기적으로 혁명이나 반란이 일어나게 된다.

2. 마름모형 구조

 '복지국가', '선진국형', '허리가 두툼한 경제''인간의 얼굴을 한 자본주의' 등 그 이름은 많지만, 자본주의 국민경제로서 가장 안정적인 상태를 가지는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이 상태에서 사람들은 극빈층에 대해서도 지원할 수 있는 마음의 여유가 생긴다.

3. 8자형, 모래시계형

 중간 계층의 일부가 위쪽으로 옮겨 가고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래쪽으로 내려 갈 때, 소위 '양극화'가 진행될 때 이런 모습이 나타난다. 부자는 더 살기가 좋아지고, 중산층은 하층으로 떨어지고, 가난한 사람들은 더욱 좌절하게 된다.

4. 중남미형 경제 - 8자형으로 위와 아래가 떨어져 버린 상태

 실제로 1950년대까지만 해도 중남미 국가 가운데 몇 몇은 마름모형으로 조금씩 바뀌는 중이었고, 아르헨티나는 세계 5위의 경제대국이었지만 1970~80년대를 거치면서 브라질, 멕시코, 아르헨티나 등 나름대로 경제대국이던 나라들의 경제구조는 부자와 빈민, 두 계층만 있는 형태로 바뀌었고 사회는 대단히 불안하게 되었다.

 

 

약한 고리의 붕괴와 8자형 구조의 비극

 

 2차 세계대전이 끝난 뒤부터 석유파동이 일어난 1970년대 중 후반까지 세계 경제가 가장 좋은 시기였다.  이른바 '영광의 삼십 년'이라고 한다. 대부분의 선진국들이 이때 마름모형 구조를 만들어 냈고, 노등자들의 생활도 풍요로워져 '노동 귀족'이라는 말이 등장하기도 했다. 이렇게 생활이 윤택해진 노동자들이 '관광'이라는 새로운 방식으로 해외여행을 다니기 시작한 때이기도 하다. 경제학에서는 이때의 경제체제를 '대량생산, 대량 소비' 혹은 '포디즘'이라고 한다.

 이 시기가 끝나고 대부분의 국가들이 크고 작은 경제 위기를 맞게 되고 한국은 IMF 경제 위기를 맞은 때이다. 어쨌든 사회적으로 '약한 고리'에 해당하는 사람들에게 고통이 집중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되어버린 것이다.

 최근 유럽에서는 8자형 구조로 바뀌는 흐름을 어떻게든 막아 보려 하는 경제 정책을 펴고 있는데, 그럼에도 이민자 2세와 이십대 일부에게 고통이 집중되는 현상을 막기에는 힘들어 보인다.

 미국에서는 유색인종이 이런 약한 고리라고 할 수 있는데, 미국 노동 정책은 약한 고리에 고통이 집중되는 현상이 미국 사회의 붕괴로까지 이어지지 않도록 여러 가지 방식으로 유색인종에 대한 보완책을 세우려 하고 있다.

 한국에서는 이십대들에게 이러한 고통이 집중되고 있다.

 이러한 일련의 흐름을 '다음 세대에 대한 착취'라고 할 수 있는데, 이십대의 비정규직의 일반화, 십대 아르바이트에 대한 가혹한 노동 착취 같은 구조의 밑바탕에는 8자형 구조로 바뀌면서 생긴 것이다.

 중산층이 붕괴되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저가의 노동 공급은 거의 무한대에 가깝다. 따라서 누군가 일부러 이런 사태를 완화시키려고 노력하거나, 정부에서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지 않는다면 결국 약한 고리에 있는 사람들이 견딜 수 없는 극한 상황까지 치달을 수밖에 없다.

 

 이긴 자가 다 갖는 승자독식이라는 게임의 법칙은 8자의 아래쪽에 있는 사람들로 하여금 엉뚱한 희망을 갖게 하고 그들의 관심을 딴 데로 돌리도록 할 뿐이다. 소위 '우아한 직업'이라고 불리는 대기업 정규직, 5급 이상의 공무원, 공기업 정규직은 5%가 넘지 않는데, 이들 역시 자신의 임금만으로 내 집을 마련하고 진짜 중산층 수준을 유지하면서 살기가 그리 쉽지는 않다.

 결국 몇 세대를 걸쳐 살펴보면, 승자가 되느냐 패자가 되느냐를 결정하는데는 단 한가지 변수가 있는데 그것은 부모의 재산이다. 부모가 부자면 자식도 부자가 되고, 부모가 가난하면 자식도 가난하게 되는 단순하고 살벌한 게임이 8자형 경제구조의 특징이다.

 

 부모가 부자가 아니라면 공부에서 승자가 된다고 해도 별 희망이 없다. 한국 사회는 분명 학력 경쟁의 구조이지만, 그 여파는 길지 않다. 대기업 정규직이라면 사십 대에, 그리고 공무원이 되었다면 현재와 같은 민영화 흐름에서는 오십대에 일터에서 나와야 한다. 승자가 되었든 패자가 되었든 불행하게 되는 것은 마찬가지이다. 그저 시간의 차이가 조금 있을 뿐 이게 바로 8자형 경제구조의 비극이다.

 

 지금 한국에서 십대와 이십대에게는 "이겨야 한다"는 말이 어떠한 말보다 절실하다. 이러한 현실이 바로 우리가 8자형 구조로 바뀌어 가고 있다는 증거 가운데 하나이다. 이런 흐름 속에서 사회는 이십대를 비정규직으로 착취하고, 아직 이십대가 되지 않은 십대들은 아르바이트로 착취하면서 번영을 유지하려고 하는데, 불행히도 이 번영은 오래가지 못한다.

 사실 승자독식이라는 말이 한국 사회에 등장한 것은 오 년이 채 되지 않는다. 그전까지만 해도 관용이라는 뜻을 가진 '똘레랑스'라는 말이 유행했음을 생각해 보면, 시간의 간격과 말의 간격이 참 차이가 많이 난다.

 승자독식은 마름모형 구조에서 8자형 구조로 바뀔 때 일시적으로 나타나는 착시 현상이다. 구조 전환이 끝나면, 사실상 신분제가 정착되고, 구 집단의 분리가 마무리되어, 아예 "경쟁하자!"라는 말조차도 필요가 없는 상태가 된다. 사는 곳이 분리되고, 학교가 분리되고, 생활양식이 분리된 상태에서는 승자독식이라는 얘기도 사라진다. 현재 중남미에 '승자독식'이라는 말이 없는 이유는 완전히 분리가 끝나난 사회이기 때문이다.

 

 인간이 기본적인 욕망대로 살아갈 때 사회는 피라미드형이다.  여기서 더 나아가 조금 더 많은 인간들이 편하게 지낼 수 있는 마름모형 사회를 만들어냈다. 하지만 이 상태는 불안정하여 구성원 전체가 서로에 대해 이해하고 노력해야 유지된다.  그래서 마름모형 사회에서 국가는 구성원들이 소위 문화적 지성을 어느 정도 갖출 수 있도록 하는 교육, 문화 같은 장치를 만든다.

 그런데 국가가 이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할 때 8자형 구조가 나온다고 할 수 있다. 지금 한국 사회가 바로 이 상태로 들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이러한 승자독식 사회는 자연스러운 욕망을 넘어 지배층의 야망만을 채우는 시스템이다. 하지만 이 체계는 지속성을 갖지 못한다. 곧 다음 단계로 넘어가는데 혁명이라는 과정을 통해 상황을 완화시키려 하거나, 파시즘을 통해 위족 블록이 아래쪽 블록을 완전히 장악하는 상황이다. 한국은 파시즘의 흐름으로 갈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 그래서 지금 십대가 이십대가 되었을 때, 이십대의 경제적 상황은 훨씬 더 불행해져 있을 가능성이 높고 사회적으로는 민주주의가 실종된 파시즘 사회가 될 가능성이 높다고 예상할 수밖에 없다.

 

 그렇다면 대안이 없을까?

마름모형 경제구조로 되돌리기 위해서 우리가 해볼 수 있는 거의 유일한 시나리오는 소위 '생태 경제적', '문화 경제적' 전환을 동시에 이루는 일뿐이지 않을까  한다. 문화적 토대를 튼튼하게 하고, 에너지와 자원의 소비는 줄이면서, 경제에서 공적인 영역, 사회적 영역의 비중을 높이는 일 말이다.

 1990년대 브라질은 아마존이라도 개발해서 먹고 살아야 겠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실제로 브라질 경제가 약간이라도 개선된 때는 아마존 보존으로 방향을 잡게 된 1990년대 후반과 시기가 맞아떨어지낟. 생태계가 작동하는 원리란 결국 다양성, 공생, 협동, 견제 같은 개념들이다. 이런 가치들은 승자독식과는 아주 거리가 멀다.

 

협동과 연대의 재구성

 

승자독식을 벗어나기 위해서는?

1. 경쟁에서 진 사람들에게도 최소한의 존엄성을 지킬 수 있도록 복지와 같은 장치들을 강화시켜야 한다.

2. 협동과 연대와 같은 경험들을 계속해서 만들어 내야 한다.

예) 말레이시아의 중,고등학교에서 벌어지는 일이다. 십 년 전까지만 해도 도시락을 싸오는 학생들은 점심을 먹고, 그렇지 못한 형편의 학생들은 굶었다. 그런데 학생생활활동조합이 만들어지면서 이제는굶는 학생이 없다. 좀 넉넉한 학생들은 급식비를 내고, 그렇지 못한 학생들은 학생생황협동조합을 통해 배식과 조리의 임무를 맡고, 그 대신 점심을 먹게 되었다. 가난한 학생이나 부유한 학생이나 이런 학교에서는 단순히 지식만이 아니라 협동하는 방법과 연대의 정신을 배우게 된다. 많은 말레이시아 학생들에게 더 이상 학교는 단순히 공부만 하거나 경쟁하는 곳이 아니다. 집에서는 굶을지 몰라도 학교에서는 친구들과 함께 밥 먹고 놀 수 있다. 학교는 삶의 중요한 기반이며 가장 즐거운 곳이다.

 

 한국의 십대들에게 더 큰 세계적 경쟁을 위해서라도 협동과 연대는 21세기 상황에 맞게 재구성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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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0. 1. 28. 18: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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